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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안현호 동지 약력 / 동지의 삶과 죽음

안현호 16.03.02 (당시 53세) 박근혜정권 노동열사


약력
1963년 전북 남원 출생
2002년 서울시청지부 대외협력부장
2003년 행정자치부장관실 점거 농성
2005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선거관리위원회 간사
2006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규국장
2011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편집실 취재1국장(공무원u신문기자)
2012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교육선전실 편집국장
2014년 서울시청지부 재정부장

동지의 삶과 죽음
베이비부머 끝 세대 1963년, 전북 남원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이 나라 장남이 짊어져야 할 권한 없는 무한 책임을 온전히 겪으며 성장하였습니다. 1978년 전북축산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축산 농부로의 꿈을 키워왔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농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끊임없는 희생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린 나이에도 무참히 깨닫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학교 진학은 축산분야가 아닌 기계공학을 전공합니다. 그 이후로 그의 전 인생을 지배한 것은 기계적 장점으로 점철돼왔습니다. 기계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다만 ‘기계를 잘못 다루는 기계적 사람이 문제다’ 라는 문제를 인식하게 됩니다. 대학교 졸업 후 1990년 서울시 암사수원지사업소에 기계기능직으로 입직합니다. 그러나 뜻한 바 있어 1994년 다시 기계직 공채로 경기도에 입직 합니다. 경기도 과천시에 산업과, 교통운영과 등 빈틈없는 업무처리로 그리고 법률에 근거한 업무 집행으로 시민과 시 집행부에 탁월함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과천의 청년, 안현호는 세상 모든 것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조리한 조직문화 현장에서 개인적 저항을 하였고, 그리고 저항의 힘을 모아나가기 시작합니다. 1999년 과천시공무원직장협의회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하며, 사무국장으로서 공무원단체의 위상을 높여갔습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과천시지부를 건설하게 됩니다.

어린 나이 축산 농가를 이루려던 소년은 기계보다 못한 엉터리 같은 세상의 문제를 알아가게 되는 순간, 공무원노조를 만나게 됩니다.

운명이었습니다. 숙명이었습니다. 공무원노조 입장에서 행운이었으며, 천군만마였습니다. 그리고 온전한 수혜를 입은 것은 서울시청지부였습니다. 2002년 단 3명으로 출발해 있던 서울시청지부를 만납니다. 경기지역본부 과천시지부에서 잘나가던 활동가는 보잘 것 없는 조직에 아무런 밑천도 없는 서울시청지부에 모든 정념을 쏟아붓습니다. 공무원노조 최고의 활동가, 안현호라는 자양분으로 서울시청지부는 한 해 한 해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안현호는 두 번의 해임을 당합니다. 2003년 행정자치부장관실 점검 농성, 2005년에는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해임을 당합니다.

2016년 3월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10년 넘게 해고자로서, 공무원노조 희생자회복투쟁위원회 성원로서, 인생 후반기를 살아갑니다. 두 차례 직을 잃은 상실감에도 불구하고 법외노조로서의 서울시청지부의 탄압 국면을 전력을 다해 사수하고, 회복투 성원로서 선도 투쟁과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어설픈 시작은 극렬히 반대하지만 시작했으면 누구보다 앞장서 활동했습니다. 불필요한 몸을 놀리는 것을 극렬히 싫어하지만,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절대로 몸 사리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지속적인 학습한 판례와 법률지식으로 어떠한 상황에 직면해서도 무도한 경찰과 사법권을 압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조합 활동의 원칙을 규약과 규정에 근거를 두고 활동하였으며, 조합 규약과 규정에 대해 꿰뚫고 있어 명쾌한 해석으로도 유명하였습니다. 그래서 근거 없는 들이댐에 안현호 앞에 누구도 자유로운 사람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단한 외피 속에 속살은 너무도 부드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원칙을 말하지만 언제나 그의 끝은 언제나 인간적 정리로 매듭을 합니다. 규약을 내세우는 것은 그 자신과 조합을 단호하게 하여 사랑하는 조직을 보호하려는 깊은 충정이었습니다.

이렇게 행동하는 실천가, 원칙을 존중하는 충직한 활동가는 공무원u신문 기자로서 새로은 활동을 시작합니다. 공무원u신문의 전신 “국가의 왼손”의 출판 등록을 서울시청에 접수하고, 기본적으로 공무원노조의 단순한 기관지 관영 성격이 아닌 독립적인 공영 언론매체로서 지향해야 한다고 명확한 입장을 가졌습니다. 어느 누구보다 공무원u신문에 치열한 애정을 갖고 있었으며, 공무원u신문 기자 명함을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기자 안현호, 기레기가 판치는 언론판에 진정한 정론 기자, 안현호 그는 칼보다 강한 펜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공무원u신문 기자의 영예를 두고 2014년 서울시청지부의 부름에 흔쾌히 응합니다. 상근활동가 하나 없는 서울시청지부의 재정부장로서의 소임을 맡게 됩니다.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기자로서의 자부심을 뒤로 한 채 서울시청지부의 어려운 상황을 책임감 있게 떠맡습니다. 조합원 1명을 늘리기 위해 발품을 파는 후생복지 사업을 마다하지 않았고, 지부 회의실 대여해주는 것조차 조합원을 늘 릴 수 있는 방안으로 짜냈습니다. 그리고 성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되면서 조합원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습니다. 타 노조 조합원이 스스로 탈퇴를 하고 전국공무원노동조합 품으로 들어오게 하는 플랫폼을 닦아 놓았습니다. 2015년 2000대를 향해 가고 있는 지부에 조합원이 한 명 한 명 늘어 날 때마다 환하게 잇몸을 들어내며 지부 임원 간부들을 훈훈하게 격려하였습니다. 집행권력 앞에서는 언제나 당당하고 굽힐 줄 몰랐지만 조합원들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남자였습니다. 이제 2016년 조합원 3000대오를 향해 가지고 함께 다짐했던 말이 유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비록 안현호 열사의 인생극장은 끝났지만, 새로운 2막을 엽니다.

그가 못다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창립 정신의 완성을 위해 그의 이름을 걸고 쟁취 완수해나갑니다. 열사 정신으로, 동지의 사랑으로, 늘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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